BlogWave

뉴스 갤러리

쏟아지는 뉴스 속에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해 드립니다.

목록으로

1,000만 명이 운집한 이란 호메이니 장례식, 그 혼돈과 정치적 격변의 기록

[한 줄 요약] 1989년 이란을 뒤흔든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대규모 장례식과 그 과정에서 발생한 통제 불능의 혼란을 되짚어본다.

2026년 7월 2일자 보도에 따르면, 1989년 6월 6일 이란 테헤란에서는 이슬람 혁명을 이끌었던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의 장례를 위해 수백만 명의 인파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당시 상황은 단순한 애도를 넘어 극심한 혼란 상태에 빠졌습니다.

Massive Funeral Crowd in Tehran
참고용 이미지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이S란 인구의 약 6분의 1에 해당하는 약 1,020만 명이 장례식에 참석했습니다. 이는 기네스 세계 기록에도 등재될 만큼 인구 대비 최대 규모의 장례 행렬이었습니다. 하지만 섭씨 33도가 넘는 뜨거운 여름 열기 속에서 수많은 인파가 몰리며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군중이 관을 향해 달려들면서 호메이니의 시신이 담긴 관이 군중 속으로 휩쓸려 떨어지는 등 아수라장이 펼쳐졌고, 초기 보고에 따르면 최소 8명이 사망하고 약 11,000명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장의 혼란은 극심했습니다. 호메이니의 아들인 아흐마드 역시 군중 속에서 쓰러지는 등 인파에 압사당할 뻔한 위기를 겪었습니다. 보안군은 군중을 해산시키기 위해 공중에 총격을 가하기도 했으나, 슬픔에 잠긴 군중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남녀 간의 신체 접촉 금지라는 이슬람 규율마저 무너지는 등 사회적 질서가 일시적으로 마비된 모습도 관찰되었습니다.

호메이니의 급작스러운 사망은 이란 정치권에 거대한 권력 공백을 남겼습니다. 그의 사후 후계 구도가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알리 카메네이가 임시 지도자로 임명되었으며, 이는 향후 이한의 정치적 향방을 결정짓는 중대한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당시 전직 이란 대통령이었던 아볼하센 바니사드르는 이러한 급작스러운 임명을 두고 정부의 '완전한 실패'라고 날카롭게 비판하기도 했습니다.